언제부턴가 우리나라 <화장실>에서 줄을 서는 방법이 바뀌었다.
화장실에서 줄서는 방법이 변했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공중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안의 각 변소 문 앞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이게 복불복이다. 내가 먼저 줄을 서 있어도 어느 변소 문 앞에 서 있느냐에 따라 순서가 바뀐다. 화장실에 늦게 들어갔더라도 줄만 잘 서면 먼저 들어 온 사람보다 먼저 변소를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분명히 내가 서 있는 옆 자리 사람이 나보다 늦게 왔는데, 상황에 따라 나보다 먼저 일을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그래서 가끔 싸움도 나곤 했었다.
살면서 작지만 제일 급한 일이였고, 제일 불합리한 시스템으로 느껴지던 때였다. 사회적 불만의 시작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시스템이 바뀌었다. 이제는 문 앞이 아니라 화장실 입구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어느 화장실 문이 먼저 열리는 지와 관계없이 화장실 입구 앞 줄에 서있는 순서대로 들어가면 된다. 아무도 불만이 없다. 불과 5 발자국만 뒤로 옮겼더니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불과 2~3미터 뒤로 가서 줄을 서니 모든 것이 보이고,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모두가 공평해진다. 선입선출이 가능해진다.
엘리베이터 병목현상을 해결하는 데에도 현명한 방법이 필요하다
엘리베이터도 마찬가지다.
가끔 어떤 빌딩에 일이 있어서 출근 시간에 가보면 난리가 아니다. 수 십 층 되는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한정되어 있고, 각각의 엘리베이터에 길게 줄을 서서, 홀수와 짝수, 저층과 고층으로 아무리 나누어도 해결방법이 없다. 사람들은 대충 줄을 섰다가 윗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면 갑자기 줄이 없어지고 결사적으로 타려고 애쓴다. 그리고 문제는 분명히 내가 줄 선 엘리베이터가 제일 먼저 내려오는데, 내려오는 중간에 누군가 타고 내리고 해서 결국에는 가장 늦게 내려오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에 불만이 쌓이게 된다. 분명히 엘리베이터는 선입선출이 아니다.
이럴 때, 가장 현명한 방법은 줄을 잘 세우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뒤로 2미터쯤에 모두가 줄을 설 수 있게 바를 설치하고 줄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는 문이 열리는대로 사람들을 엘리베이터 용량에 맞게 타도록 가이드를 해 주면 된다. 화장실 앞에 줄을 세우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러면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순서대로 타게 된다. 합리적이다. 모두가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다.
약간 뒤로 물러서야 모든 것이 잘 보인다. 뒤로 물러서면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바뀐다. 엘리베이터 한 대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고 올라가는 모든 엘리베이터의 상황을 알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이 눈에 보이면 맘이 편해진다.
장기를 두는 사람보다 훈수 두는 사람이 판을 더 잘 읽는다
사업은 특히 더 그렇다. 문제가 생길 때에는 좀 벗어나야 한다. 슬픈 일이지만 옛날 전쟁터에서 사령관은 늘 산꼭대기에서 수를 놓고, 그 수에 따라 병사들은 깃발이 흔들리고 나팔이 부는대로 움직여야 했다. 몇 명의 병사들이 죽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판을 어떻게 까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였다. 멀리서 봐야 잘 보인다. 사령관이 뛰어들어서 싸우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사업도 그렇다. 사업은 수게임이다. 장기를 두는 사람보다 훈수를 두는 사람이 판을 더 잘 읽는 것과 같다.
조금은 뒤로 물러설 용기와 여유가 있어야 한다
물러서야 판이 보인다. 특히, 벤처들은 더 그렇다. 주변에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인력 POOL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아니, 어쩌면 때때로 벤처들 스스로 귀를 막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나 변소 문 앞에 꼭 달라붙어 있는 경우와 같다. 시스템적으로 만들던 스스로 만들던 조금은 뒤로 물러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조금은 뒤로 물러설 <용기>와 <여유>가 있어야 한다. 조급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창조적인 결정을 할 수 가 있다. 이길 수 있는 패를 찾을 수 있다.
모든 것에 너무 달라붙지마라. 세상은 내 시야만큼만 보인다. 물러서야 더 많이 보인다.
(주)피엘씨, 정석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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