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꼬리스토리가 펫샵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종이 울린다]
오전 9시 55분, 귀여운 몰티즈 얼굴이 크게 걸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굳게 닫힌 문 앞에 아르바이트생 3명이 쭈뼛거리며 가게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눈 후 이어지지 않는 대화를 나누다 침묵 속에 시간을 보내길 몇 분. 10시 정각이 되자 한 남성이 슬리퍼를 끌며 등장하더니 가게 문을 열었다.
“딸랑딸랑”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사방에서 개 짖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조금 전까지 쥐 죽은 듯 조용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가게 안에 가득 찬다. 앞치마를 매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카트를 끌고 유리장 앞으로 향한다. 펫샵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떨어트리면 월급에서 깝니다]
첫날, 유독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혹 ‘무슨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무엇을 하다 왔는지’ 물어볼까 미리 답변까지 준비해 갔지만 다행히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펫샵 매니저만 빼고.
“이 일해본 적 있어요?”
처음이라고 대답하자 매니저가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시범에 나섰다. 유리 진열장을 열자마자 누워있던 강아지가 반가움에 깡충깡충 뛰어왔지만, 그는 아무 감정 없이 왼손을 뻗어 강아지를 벽 뒤로 밀어붙였다. 장갑을 낀 오른손으로 대변을 주워 카트에 달린 종량제 봉투에 버렸다.
그리고 쭉 뻗고 있던 왼손을 강아지 배 아래에 넣고 들어 올렸다. 오른손으로 진열장 안에 소독약을 뿌리고 구겨진 신문지를 걸레 삼아 구석구석 닦아냈다. 청소를 끝낸 그가 강아지를 진열장 안으로 넣고 문을 닫으며 말했다.
“한번 해보세요.”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유리장에 손을 뻗을 때였다. 짧은 탄식을 내뱉은 매니저가 깜빡하고 미처 전하지 못했던 한 가지 주의사항을 큰소리로 강조했다.
“얘네 떨어트리면 월급에서 깝니다. 다치면 못 팔아요.”
[펫샵의 뒷방]
나는 꽤 오랫동안 ‘저기요’라고 불렸다. 처음엔 살짝 불쾌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유를 나름 알 것도 같았다. 내가 본 것만 해도 하루 만에 그만둔 알바생들이 수두룩했다.
출근 둘째 날부터 알바생 한 명이 무단결근했다. 작업에 차질이 생긴 매니저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난감한 표정으로 우리를 둘러보더니 이내 시선을 나에게 고정했다. 그가 손을 들어 가볍게 손짓을 했다.
매니저를 따라 구석 모퉁이를 돌자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나왔다. 통로를 지나 어두운 방으로 들어서자 바닥에 종이 박스가 대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매직으로 크게 ‘반품’이라고 적혀있었다. 그 안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아있는 강아지였다.
벽에는 홀과 마찬가지로 진열장이 3열로 진열되어 있었다. 물론 그 안에도 강아지들이 들어 있었다. 녀석들이 있는 유리장은 대부분 자신의 설사와 소변으로 뿌옇게 번져있었으며 냄새부터 지독했다. 바깥에 있는 아이들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이곳의 아이들은 크게 네 종류였다. 강아지라고 말하기엔 조금 큰 아이들,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아이들, 반대로 정신없이 산만한 아이들. 그리고 바닥에 놓인 반품까지. 즉, 팔리지 못한 성견과 병든 아이들을 모아놓은 장소. 이곳은 손님에게 공개되지 않는 펫샵의 뒷방이다.
[빙글빙글]
펫샵의 뒷방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었다. 유리장이 무척 좁아 보일 정도로 덩치가 커져버린 갈색 푸들. 녀석은 제자리에서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돌고, 돌고, 계속 돌았다. 그러다 앞발로 왼쪽 유리장 벽을 때리고, 뒤돌아 오른쪽 벽을 때렸다. 그때마다 녀석의 거친 호흡에 벽에 김이 묻었다 사라졌다. 요란한 춤사위는 내가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퇴근할 때까지 2시간 내내 계속되었다.
갈색 푸들이 유일하게 바깥공기를 쐴 수 있는 시간은 청소시간이다. 성견이 되어버린 녀석을 한 손으로 들고 청소할 수가 없어, 녀석이 들어있는 진열장을 청소할 때는 잠시 밖에 꺼내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런데 그마저도 가로세로 1m도 안 되는 좁은 이동 철장 안에 다시 가둬놔야 했다.
갈색 푸들이 뒷발로 일어서서 철장에 두 앞발을 얹어 보지만, 철장의 높이는 녀석이 선 키보다 한 뼘은 더 높았다. 그래도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철장 밖으로 나가기 위해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등 뒤로 철장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리장 청소 시간과 녀석의 자유 시간은 비례했다. 5분 남짓의 짧은 청소가 끝나고 제 자리에서 뛰고 있는 녀석을 유리장 안으로 넣어야 했다. 유리장 안에 들어가기가 어찌나 싫었는지, 거칠게 바둥거려 앞치마와 토시에 녀석의 분변이 묻어났다.
유리장 안에 들어간 갈색 푸들은 제자리에 우뚝 서서 섭섭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5초 정도 흘렀을까. 녀석은 다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돌고, 돌고 계속 돌았다.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유리장이 점점 뿌옇게 흐려졌다.
[아무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해 뒷방에 들어서 불을 켜보니 갈색 푸들이 있던 진열장이 텅 비어 있었다. 지나가던 직원에게 녀석이 어디 갔는지 은근슬쩍 물어보았으나 직원은 양쪽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몰라요. 저도 항상 그게 궁금해요.”
그날따라 방 안이 너무 조용하게 느껴졌다. 빙글빙글 돌며 헥헥거리던 녀석의 숨소리도, 앞발로 유리장 안을 두들기며 덜컹덜컹- 하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몸이 아픈 다른 강아지들은 기운 없이 누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조용한 침묵이 이어지자 머릿속이 시끄러워졌다.
갈색 푸들도 한때는 주먹만 한 강아지였다. 저 바깥에 있는 홀에서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렸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선택받지 못한 채 덩치가 커져 버린 녀석은 어두컴컴한 뒷방으로 유배되었다. 좁은 유리장 안에 몇 달간 갇혀 빙글빙글 돌다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녀석이 극적으로 입양되었기를 바랐다. 좁은 진열장 밖으로 나와 넓은 잔디 위를 뛰놀고, 푹신한 소파 위에 대자로 벌러덩 드러누워 낮잠 자고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도, 그 직원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걸.
[모든 게 그대로였다]
“딸랑딸랑”
오전 10시, 오늘도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사방에서 개 짖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오늘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앞치마를 매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카트를 끌고 뒷방으로 향한다.
오늘도 진열장 문을 열고, 무표정한 손을 뻗어 강아지를 뒤로 밀어붙였다. 청소가 끝나면 바로 다음 진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오늘도 한 달 전과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마음이 편안했다. 오늘은 강아지를 뒤로 밀어붙여도, 다음 진열장으로 향해도, 아파하는 아이를 보아도 마음이 편안했다. 오늘은 반품이라고 적힌 종이 박스를 옮겨도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그날, 펫샵을 그만뒀다.
문제는 컴퓨터 앞에 앉아도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서론부터 막혔다. 무엇을 얘기해야 할 지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동정심이 무뎌진 상태로 펫샵을 고발하는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책임감을 가슴 깊이 묻어두었다.
그사이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언론은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가 도래했다며 호들갑을 떨고, 19대 대선에선 모든 후보가 반려동물 공약을 들고 나왔다. 텔레비전에선 반려동물 관련 프로그램이 쏟아졌고, 반려동물 행동 전문가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스타가 되었다. 그야말로 반려동물 전성시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을 하던 중 내가 일했던 펫샵의 계정을 우연히 발견했다. 약 10만 명의 사람들이 팔로워하고 있는 펫샵의 계정은 귀여운 음악을 입힌 강아지 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개란에 적힌 홈페이지로 이동하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팝업이 떴다. ‘저희는 불법 농장에서 아이를 데려오지 않습니다.’
과거 그곳에서 날랐던 수많은 반품 상자 속 생명들과 갈색 푸들의 섭섭한 표정이 떠올랐다. 생명을 합법적으로 데려온들 반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생명을 정식으로 유리장 안에 가둔들 아이의 덩치가 작아지지 않는다. 내가 직접 목격하고 가담했던 그 끔찍한 학대는 펫샵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였다. 그 펫샵은 가소로운 문구 한 줄로 착한 기업이 되어있었다.
이것이 내가 뒤늦게 <펫샵의 뒷방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다. 펫샵은 착한 기업인마냥 뻔뻔한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들이 운영하는 SNS 계정은 귀여운 음악을 입힌 강아지 영상으로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고 있다. 반려동물 전성시대라곤 하지만 나아진 것은 하나 없었다. 펫샵은 오늘도 그대로였다.
사실, 많은 사람이 내 이야기를 읽는다 해도 당장 내일이 달라질 거라곤 생각하진 않는다. 내일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불편한 진실을 계속 외면할 것이라고 꽤나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편한 감정이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였으면 좋겠다. 이 불편한 감정이 언젠가는 고개를 들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불편했으면 좋겠다. 만약 당신이 형평성을 이유로 동물 복지의 하향 평준화를 주장하는 사람이라 해도, 만약 당신이 평소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해시태그를 보며 비웃는 사람이라 해도 아주 잠시나마 표정이 굳어졌으면 좋겠다. 이 글에 공감하지 않는다 해도 잠깐이나마 흔들렸으면 좋겠다. 비극적인 영화 한 편을 본 것처럼, 당신의 가슴 한켠이 무거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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