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임상수의학회(회장 오태호 경북대 교수)가 지난 3월, 전국의 수의과대학 재학생(예과 1~2학년/본과 1~4학년) 300명에게 그들의 관심사, 특히 ‘졸업 후 진로 문제’ 에 대해 물었다. 전국 10개 수의과대학 재학생 3,000여명 중 10% 정도의 표본을 골라 설문 조사한 것.
미래의 수의사들 관심사를 학회에 반영해보겠다는 새로운 시도였다. 하지만, 응답은 의외로 높지 않았다. 128명이 답했다. 그래도 여기엔 2020년대 수의대생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 지 가늠해볼 단초는 발견할 수 있다.
서울대 서경원 교수<사진>는 22일 오전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2022 춘계학술대회’에서 세션의 하나로 진행된 ‘진로탐방 특강’에서 사회를 보며 이를 설명했다.
이들 수의대생들이 현재 바라는 진로 1순위는 임상대학원 진학(33.6%)과 임상수의사(32.0%). 다른 것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것도 반려동물(개/고양이) 임상이 약 90%. 복수응답으로 받은 것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반려동물 임상을 희망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산업동물(소/말/돼지 등)이나 야생동물, 특수동물(기니피그, 고슴도치 등) 등은 30%를 채 넘지 않았다.
이번 학회 등을 통해 “듣고 싶은 강사”도 현장의 임상수의사, 그 중에서도 반려동물(개/고양이) 임상을 하고 있는 현직 수의사가 단연 1등.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구분이 시작된다. 1~2명 수의사가 여러 질환을 다루는 로컬병원 수의사에게 자신의 진로를 묻고 싶은 건 46.1%로 절반 이하. ‘동네병원’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반면, 외과 안과 피부과 방사선과 치과 등 특화진료를 하는 2차 동물병원 수의사나 아예 ‘전문’병원을 차린 수의사에게 묻고 싶은 비율은 60~70%를 넘었다. ‘전문의'(specialist/diplomate)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다는 걸 시사한다.
아예 미국 유럽 등으로 진출한 해외 수의사에게 진로를 듣고 싶어하는 비율도 35.9%로 높았다.
반려동물 임상 수의사가 1순위…내과 외과 안과 피부과 영상의학 등 특화진료
이들에게 듣고 싶은 주제들도 20대 Z세대 성향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분야별 현재 상황과 진입 장벽은 어떤 게 있는지’는 무려 94%나 됐다. 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지’(47.7%)나 ‘그 분야를 선택하게 된 계기’(26.6%) 등도 궁금해했다.
하지만 선배들의 연봉(61.7%)과 ‘워라밸’(work-life balance)(49.2%) 여부에 대한 관심도 그에 못지 않게 높았다.
이들 재학생들에게 다시 ‘자기 자신의 직업 가치관’에 대해서도 물었다. 수의사라는 전문직업인로서 이들이 가장 높게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연봉(68%)과 직업성취도(63.3%)가 쌍벽을 이뤘다. 동물을 보살피고 병을 낫게 하는 직업적 자부심과 함께 현실에서의 보상 욕구가 나란히 가장 높았던 것. 그 다음은 워라밸(57%)과 직업적 안정성(33.6%)을 꼽았다.
“직업적 만족과 성취도 필요해요. 하지만 이를 현실적으로 대변하는 건 연봉”
이와 함께 사회에 진출한 후 살아갈 거주지역(21.1%)과 사회적 지위(20.3%)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가치에 들어갔다.
“전문과목 임상을 배우려 내년에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밝힌 한 재학생 참가자(본과 4학년)는 “동물의 생명을 다루는 수의사로서의 보람, 직업적 성취와 만족도 역시 중요할 것”이라면서도 “박사까지 한다면 예과 1학년부터 10년 넘는 세월인데, 금전적 보상이 뒤따라오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문제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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