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전쟁 기념관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호주 군인들의 기념비 앞에 꽂아둔 꽃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입니다.
직원들은 처음엔 기분 탓인 줄 알았습니다. 꽃을 훔쳐서 어디 유용한 데 쓸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죠.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여기저기 휑한 비석이 드러났고, 결국 직원들은 누군가 꽃을 훔쳐 가고 있음을 확신하고 범인 색출 작업에 나섰습니다.
한 달여가 지나도록 범인의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으나, 지난 11월 초 직원이 꽃을 훔치는 직원을 현장에서 목격했습니다.
바로 비둘기였습니다!
비석에서 빨간 양귀비꽃 한 송이를 입에 물고 있던 녀석은 어딘가로 유유히 날아갔습니다.
직원은 눈앞에서 꽃을 훔치는 도둑을 목격했지만, 하늘 높이 날아가는 녀석을 따라잡을 수 없어 포기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비둘기는 기념관 건물 내부로 날아 들어갔고, 직원은 녀석을 뒤따랐습니다.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근처에 앉아있던 비둘기는 입에 꽃을 물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날아올랐습니다.
비둘기는 건물 천장의 높은 곳까지 날아오르더니 스테인드글라스 창가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곳엔 수십수백 송이의 꽃이 쌓여있었습니다.
꽃으로 만든 비둘기 둥지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전쟁 기념관 측은 건물 안에 양귀비꽃으로 둥지를 튼 비둘기의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며 “전쟁 기념관 안에 비둘기가 둥지를 틀었다는 건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호주의 역사학자 멜레아 햄튼 박사가 보충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사람들이 비둘기를 불쾌한 동물로 생각한 건 그리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비둘기는 원래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새입니다. 1차 세계대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은 비둘기를 이용해 아군과 소통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도 비둘기는 큰 공을 세웠죠.”
2차 세계대전은 무전 통신 장비를 사용했지만 포탄으로 인해 장비가 자주 망가졌고, 그때마다 훈련된 비둘기를 사용하곤 했습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에서 큰 공로를 32마리의 비둘기가 공로를 인정받아 메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인간을 위해 목숨을 걸고 활약해온 게 바로 비둘기입니다. 역사적으로 비둘기는 인간에게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유대감이 있어요.”
가장 유명한 비둘기는 ‘화이트 비전’이라는 이름의 비둘기로 공군에서 복무하며, 최악의 상황에서 어떠한 통신 수단도 없던 호주 군인들의 상황을 본부에 알려 구조한 영웅이죠.
“비둘기가 희생 군인을 기리는 꽃을 이용해 기념관 안에 둥지를 잡은 것. 우리가 상징적이라고 말하는 이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