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 달걀을 낳는 암닭 ‘산란계'(産卵鷄)가 들어있는 철제 감금틀(cage)을 마치 배터리 쌓듯 빽빽하게 쌓아 놓았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여기 암닭들은 하루 종일 가로, 세로 50cm 틀에 갇혀 있다. 암탉 6~8마리가 한 케이지에 들어있으니, 암탉 한 마리에겐 0.05 ㎠ 정도 공간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프린터 A4 용지 반장 크기. 돌아설 수도, 날개짓도 할 수 없다. 우리나라 산란계 95% 이상이 이렇게 사육된다.
새끼를 낳는 암컷 돼지에게도 비슷한 틀을 사용한다. 통칭, ‘스톨'(stall)이라 한다. 임신한 암퇘지를 폭 60cm, 길이 210cm인 틀에다 가둬 놓고 기르다, 새끼를 낳을 때만 다른 우리로 보낸다. 3~4주 동안 새끼에게 젖을 먹이다 다시 스톨에 감금해 임신-출산을 반복한다. 우리 돼지 농가의 96%가 이렇게 한다.
여기에 ‘동물복지’라는 가치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유럽연합(EU)은 지난 2012년 배터리 케이지 사육을, 2013년 돼지 스톨 사육을 전면 금지했다.
미국도 2008년 플로리다 주를 시작으로 메인 주, 캘리포니아 주 등 점차 스톨 사육을 금지하는 법안이 마련되고 있다. 세계적인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우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2020~2024년 동물복지 종합계획’에서 산란계 배터리 케이지 사육 방식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겠다는 방향만 겨우 내놓은 상태.
임신한 어미돼지에 대한 감금틀 사육 기간도 교배 후 6주 이내로 제한하지만, 이마저도 10년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빨라야 2030년이 돼서야 어미돼지 스톨 사육을 일부 제한할 수 있게 되는 것.
10월 2일은 ‘세계 농장동물의 날'(World Farm Animals Day)이다. 올해로 40번째 맞았다.
동물권행동 카라(대표 전진경, 이하 카라)는 산란계 배터리 케이지와 어미돼지 스톨 추방을 염원하는 4만명(39,548명) 시민 목소리가 담긴 서명부를 지난 30일, 국회 농해수위 소속 19개 의원실에 전달했다. 동물보호법과 가축전염병 예방법 등의 법률을 소관하는 국회 상임위다.
동물권행동 카라, 국회 농해수위 소속 의원들에 케이지와 스톨 추방 염원하는 4만명 서명부 전달
카라는 국내 감금틀 추방을 위해 2015년부터 서명 캠페인을 진행해왔고, 그 결과물인 서명부를 지난 7월 정부(농림축산식품부)에 전달하며 빠른 이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 서명부를 국회에도 한번 더 전달한 것이다.
서명부에는 “모든 동물이 각자 생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공장식 축산에 강력 반대합니다.”, “나와 함께 사는 강아지나 농장의 닭이나 모두 똑같은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제발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해주세요.”와 같은 시민의 염원이 담겼다.
카라 조현정 활동가는 “공장식 축산은 동물복지를 해치고 기후변화에 미치는 악영향 측면에서도 세계적으로 지탄받고 있다”면서 “정부와 국회는 배터리 케이지와 스톨 사육 금지 방안을 한시라도 빨리 마련하고 수만, 수십만씩 동물을 밀집사육하는 공장식 농가의 사육두수 제한도 살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