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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동물진료비 사전고지제’… 제대로 될까?

【코코타임즈】

이번 수의사법 개정안은 그동안 반려동물 보호자들이 동물병원을 다니며 느꼈던 숱한 불만들의 핵심을 두루 짚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정부가 반려동물 보호자 보호차원에서 오랫동안 검토해 오던 사안들을 실제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점에서 동물진료 체계에도 대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하지만 핵심 당사자의 하나라 할 동물병원계가 이런 변화에 큰 부담을 느끼고 반대의견을 낼 것이 분명한 만큼 정책이 순조롭게 시행되기엔 아직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입법예고안, 어떻게 구성돼 있나

이번 개정안의 핵심 사항은 △중대 진료 사전 설명 및 서면 동의 △진료비 사전고지 의무화 △반려동물 보호자 권리와 의무 제정 등이다. 

이에 따르면 수의사는 수술, 수혈 등 의료사고가 날 수 있는 ‘중대한 진료’를 할 경우, 그 진료내용은 물론 예상 진료비 등을 미리 설명하고 반드시 보호자 서면동의를 받도록 했다. 보호자들이 그 설명을 듣고 수술 등 중대한 진료를 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

수의사가 의무적으로 설명해야 할 내용은 사람 의료법에서 지정한 것들과 비슷하다. 진단명, 수술의 필요성과 방법, 예상되는 후유증 또는 부작용, 수술 전후 보호자가 준수해야 할 사항 등.

이 내용은 입법예고, 국무회의를 거쳐 4.15총선으로 새로 구성될 제21대 국회에서 통과돼 비로소 공포가 되고, 이어 6개월 유예기간을 지나야 해서 그 시행은 일러도 내년초는 되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진료나 검사 결과에 따라 수술 방법이나 내용을 바꿔야 할 상황이라면, 그 내용도 반드시 서면으로 알리도록 했다. 보호자와 사전 협의 없이 수의사들이 일방적으로 진료를 하는 행위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또 동물병원은 간단한 진료부터 표준화된 다빈도 진료까지 진료비를 책자나 병원 홈페이지 등으로 보호자에게 미리 알리도록 했다. 진료비를 고지해야 하는 진료 항목들은 농림부가 별도 지정할 계획이다.

이럴 경우 정기적인 예방접종은 물론 건강진단, 슬개골 탈구, 중성화 수술, 이물질 섭취, 발치, 간단한 피부염 등 자주 일어나는 질환들에 대해선 병원들간 비용의 차이가 상당부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내용은 수의사가 2명 이상 있는 중형병원은 개정안 공포로부터 1년 후부터, 1명이 있는 소형병원은 2년 후부터 적용된다.

이어 병원 안에 의료서비스에 대한 보호자 권리와 의무를 잘 보이는 곳에 게시해야 한다. 이른바 ‘보호자 권리장전’ 같은 것. 보호자들에게 병원 가서 너무 주눅들지 말고, 권리를 제대로 찾아 행사하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정부는 수의사법 개정안에 이러한 제도 변화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동물병원별 진료비 현황 공개 △동물진료 표준화 제도 등도 함께 넣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농림부 장관은 전국 동물병원 진료비를 조사·분석해 진료항목별로 평균가격과 가격 범위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병원들 진료비 수준은 어떤지 보호자들이 알도록 하자는 것.

특히 자주 일어나는 ‘다빈도’ 진료에 대해서는 진료항목·진료코드 등의 표준을 마련해 별도 고시할 계획이다.

당장 이름부터 ‘광견병’ ‘공수병’ 등으로 다르게 부르는 것을 통일시키고, 진료 과정이나 약품 처방, 진료비 산정 방식 등을 표준화하자는 것. 

이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5년부터 사람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항목을 표준화하기 시작한 것을 벤치마킹한 것.

처음 52개 항목으로 시작한 표준화 진료항목은 지난해의 경우 340개까지 늘어났다.

  • 왜 지금인가

농림부는 사실 오랜전부터 동물병원 진료내용 및 진료비 사전고지제를 준비해왔다. 진료비를 사전에 알기 어려워 병원-보호자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한편 과잉 진료의 우려도 크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동물병원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가장 큰 불만도 진료비 미고지(15%), 과잉진료(14%), 진료비 과다(12%) 등이었다.

가까이는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정당들이 이번 4.15 총선 공약으로 이를 앞세운 것도 큰 자극제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반려동물 관련 총선 대표 공약으로 △반려동물 진료비 체계 개선 △반려동물 서비스 환경 여건 제고 △동물복지 인식 개선 △국민 친화적 동물복지 정책 서비스 활성화 등을 내세웠다.

특히 반려동물 진료비의 경우 수의사가 진료행위 주요정보를 미리 알려주는 ‘사전고지제’와 개별 병원별로 진료비 공개 등 ‘사전공시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핵심. 이를 위해 진료항목 표준화 및 코드화를 추진하고, 동물의료협동조합 등 민간동물 주치의 사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미래통합당 역시 △반려동물 진료비(진료항목) 표준화 방안 및 세제혜택 마련 △공적보험제도 도입 등을 제안했다. 그 중 진료비와 관련해서는 진료비(진료항목) 표준화를 규정하도록 수의사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었다.

특히 반려동물 가구가 전체의 28.1%(2017년), 즉 서너집 걸러 한 집 이상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대에 와 있다.

전국 반려동물병원이 4천524곳(2018년)에 이르러 갖가지 의료사고가 빈발하고 있다는 점도 큰 이유가 됐다.

동물복지보호단체들은 “이번 코로나19 광풍을 거치며 의료 보건 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재인식하게 된 만큼 한가족이나 다름없는 반려동물 의료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걸림돌은 뭔가

하지만 막상 이번 개정안의 핵심 당사자의 하나라 할 수의계 및 동물병원계 반응은 떫떠름하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수의사나 동물병원들로선 부담이 여간 크지 않기 때문.
 
이에 따라 대한수의사회(회장 허주형)와 한국동물병원협회(협회장 이병렬)는 당장 내부 의견 수렴 작업에 들어갔다. 동물병원계는 “사람 의료체계와 같은 진료항목 표준화, 충분한 정부 연구용역 실시, 관련 예산 확보(수의료서비스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이 선행되지 않으면 해당 개정안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에 대비해 수의계와의 협상을 위해 여러가지 포석을 준비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의사법에 명시된 ‘자가진료 금지’라는 대전제에 비추어 반드시 수의사 진료를 받아야 하는 예방접종과 백신, 동물약품 등 처방대상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왔기 때문.

물론 이 문제는 현재 동물약사협회 등 약사회쪽이 강력 반발할 것이어서 이 또한 걸림돌이 된다.

또 진료표준화에 대한 연구조사 업무도 수의사회에 위탁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방대한 연구조사 용역부터가 수의사회에 대한 예산 지원의 성격을 띠는데다, 연구조사 과정에서 구체적인 시행방안들이 동물병원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꾸며질 여지도 있다.

그 와중에 현재 공포 후 1~2년으로 정해진 시행 유예기간이 훨씬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농림부 방역정책과 박유천 사무관은 “진료내용이나 진료비 전체가 사전고지 대상인 것은 아니다”라며 “예방접종, 엑스레이 등 단순한 진료항목들부터 표준화 항목으로 정하고, 순차적으로 이를 확대해나간다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기본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른 한편으론 이번 개정안조차 동물병원들이 중대 진료에 보호자 동의를 받지 않았다해도, 진료비를 게시하지 않았다해도 실질적인 제재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상당한 의문이 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례로 이를 어겨도 과태료 100만원 이하 또는 시정명령에 불과한데다,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과태료 또는 영업정지 등 2차 처벌까지 나아간 선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

  • 남은 과제는

결국 농림부가 여야의 이번 총선 공약과 동물복지보호단체, 그리고 보호자들의 지원을 기대하며 이번 수의사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은 타이밍 측면에선 상당히 절묘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관철하고 조기에 실현시키기 위해선 이번 4.15 총선에 따른 국회 지형 변화라는 변수가 남아있다.

또 이해기반이 충돌하는 수의사회 약사회 등 전문가단체들과 어떻게 조율해 들어가느냐 하는 점도 사실 어려운 문제.

결국 수의사와 보호자들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을 개선하고, 투명한 동물진료시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정부로선 이들과의 협상력 여부가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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