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묘’는 언제부터일까요? 보통 10살이 넘으면 노령묘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때부턴 이전과 다른 일들이 많이 벌어지죠.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에요. 잠이 늘고, 안 놀고, 안 움직이고, 꼬질꼬질해졌어요.”
다들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관절염 때문에 엉덩이와 발목이 아파서 그런 것이라면 어떤가요? 목이나 허리를 잘 구부리지 못해 그루밍을 못하는 것이고, 관절이 아프니 바닥이 미끄러운 곳이나 턱이 있는 곳에 다가설 땐 우물쭈물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노령묘를 검진해보면, “정상이 아닌” 상태가 한꺼번에 여럿 발견됩니다.
그래서 이때부턴 보호자와의 대화가 좀더 복잡해지죠. 복용 중인 내복약과 영양제, 환자의 수면 패턴과 식사량, 운동량의 변화, 사회성, 보행 상태와 통증 여부 등등. 거기에다 소변과 대변을 볼 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는지, 또 너무 자주가는 건 아닌지, ‘우다다’나 그루밍은 잘 하는지까지.
보호자들은 아이 체중과 식사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거나 구토, 설사까지 하는 상황이 돼서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예상하겠지만, 이런 경우는 질병이 이미 70% 이상 진행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죠.
그 긴 시간동안 아이가 통증에 시달린 것을 나중에 알고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한숨 쉬는 보호자들도 꽤 많습니다.
고양이에 가장 많은 노령질환은 만성신부전. 그 다음은 당뇨병과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있습니다.
거기다 노령묘의 80%가 앓고 있지만 잘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퇴행성 관절염에다 여러가지 치과 질환들도 문제죠. 악성 종양과 치매 등도 대표적인 노령 질환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여러 질병이 함께 진행하면서 서로 영향을 미치고, 합병증까지 생긴다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고양이가 이제 아프구나, 제 수명을 못 살겠구나” 하며 절망과 근심에만 빠져 있어야 하나요?
수의사도 그 모든 ‘비(非)정상’ 소견들에 대해 모두 완치를 목표로 진료 계획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이때부터라도 적절히 관리를 해서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삶의 질'(QOL)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새로운 진료 목표가 돼야 하니까요.
고양이 같은 동물은 사람보다 4배나 빠른 시간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노령 질환 대부분도 시속 100km 속도로 가파르게 나아갑니다. 이럴 땐 질환 진행속도를 시속 50km, 60km로 낮추어서라도 고통을 덜어주는 게 아이에게도, 보호자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집에서도 아이 체중을 1~2주에 한 번씩은 측정해보고, 사료를 일정량 정해 급여하면서 섭취량이 줄어드는지, 감소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질병의 조기 발견 방법이 됩니다.
그러면서 아이 상태가 호전되기도, 악화되기도 하는 것을 지켜보게 될 테죠. 결국엔 맞닥뜨리게 될 아이와의 이별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을 노령묘 관리에 포함시키는 이유입니다.
고양이는 참 매력적인 동물입니다.
이 아이들의 탄생과 성장, 빛나는 청춘과 성숙한 장년, 그리고 서서히 기울어가는 노령기를 보고 있으면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도 축복이지만, 비록 아프더라도 남은 여생을 가치 있고 고통스럽지 않게 해주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특히 10살 이전부터 건강을 잘 관리해왔다면, 10살 이후는 당연히 더 수월하고 심플해질 수 있을 겁니다.
보호자들이 아이 관리일지를 만들어 약물의 복용, 식이, 음수, 배변, 배뇨 등에 대한 기록을 작성하고, 길게는 3~6개월, 짧게는 2~4주에 한 번씩이라도 병원을 찾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되겠죠.
아프지 않을 때 하는 건강검진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게 해줍니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해주는 토대가 되는 거죠. 하지만, 아플 때 하는 건강검진은 아이가 덜 힘들면서도 ‘정상’에 가깝게, 그리고 더 오래 장수할 수 있게 해주는 비결입니다.
글=이기쁨 원장(청주 고려동물메디컬센터 고양이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