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타임즈】
우리나라 4천500여 동물병원들을 대표하는 한국동물병원협회(KAHA) 이병렬 신임 협회장은 21일 오후 <코코타임즈>와 만나 “수의사 처방 대상 의약품을 확대하자는 게 수의사들이 돈 더 벌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면서 “잘못된 우리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것”이라 강조했다. KAHA가 전국 수의사들을 대상으로 최근까지 서명운동을 벌여온 것도 그런 때문.
이 협회장은 또 내년 8월부터 시행될 ‘동물보건사’ 국가자격제도에 대해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나, 전체의 70%나 되는 ‘1인 동물병원’들 영세한 현실을 감안하면 채용 여력이 없을 것이란 점이 큰 걸림돌”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우리나라 임상 수의사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갈수록 높아가는 보호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작한 ‘유럽 인증의’ 교육과정을 과감히 확대하겠다”고 했다. ‘전문의’ 제도가 없는 우리 수의계 현실에서 그나마 공신력을 갖춘 국제 교육과정이라고 보기 때문.
하지만 일부 동물병원들의 과당 광고와 불법진료와 관련해선, “대한수의사회와 함께 ‘광고 사전심의제’ 등 필요한 자정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병렬 협회장과의 일문일답.
– 취임 초부터 ‘수의사 처방 대상 의약품 확대’를 강력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현재 전체 동물약품들 중에서 20.7% 정도만 수의사 처방 대상 약품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지난 2017년 7월부터 반려동물 자가 진료를 전면 금지하도록 수의사법이 개정됐지만, 아직 법이 무용지물인 거죠. 개와 고양이 백신 등 주사기를 이용한 의료 행위는 무면허 불법진료에 해당된다는 법원 판결도 나와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농림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농림부에서 최근, 관련 단체들과 기관들에 의견조회를 하고 있는 것도 그런 때문이구요.
최소한 반려동물 백신이나 주사용 의약품부터라도 반드시 수의사들 처방받도록 해야 우리 아이들 생명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집에서 주사 놓다가 쇼크가 생기거나, 피부가 짓무른다든지 다른 합병증이 충분히 생길 수 있으니까요. 사람이라면 집에서 가족들이 그냥 주사를 놓고 할까요?”
– 많은 청년들이 ‘동물보건사’ 국가자격제에 관심이 큽니다.
“도입 당시부터 동물보건사 ‘업무의 범위’가 큰 논란이 됐었습니다. 채혈이나 주사, 스케일링 등 의료 행위까지 허용해야 하느냐는 거죠.
어쨌든 그건 안 하는 것으로 정리가 됐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아직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1인 동물병원의 경제적인 현실을 감안하면 과연 채용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이란 정부 목표가 실현되려면 제도 시행 초기에는 정부의 지원정책 여부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나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전체 동물병원의 60%가 몰려 있는 수도권은 프랜차이즈 병원부터 공동 개원, 전문(화) 병원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반면, ‘1인 병원’들의 생존 문제는 더 어려워지고 있구요.
“현재 국내의 반려동물병원 수는 한마디로 포화점을 넘은 상태입니다. 매년 500명 이상의 배출되는 수의사 면허 소지자들이 대부분 소(小)동물 임상으로 몰리기 때문에 내부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죠.
걱정스러운 것은 머잖아 국내 수의로 체계에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거죠. 그게 꼭 수의계만의 이슈는 아니기에 정부–수의계–병원계–보호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와 관련된 일입니다.”
– 공약의 하나로 ‘유럽 인증의’ 교육과정을 확대하겠다 했죠?
“수년 전부터 유럽의 수의사 평생교육시스템 ISVPS(International School of Veterinary Postgraduate Studies)를 도입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GP SAS(수의 외과 유럽 인증의) 과정’을 론칭했구요. 오는 5월부터는 ‘수의 내과’, 9월부터는 ‘수의 치과’ 과정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유럽과 미국의 정식 수의 전문의가 우리나라를 직접 방문해 이론 수업을 진행하고, 실습은 일본으로 가서 교육을 받는 등 체계적이고 공인된 교육과정입니다. 아마 우리나라 수의 진료 실력을 더한층 높일 수 있는 것은 물론, 높아진 보호자들 기대 수준에도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동물병원들이 너무 난립하면서 갖가지 문제도 함께 커져가고 있습니다. 병원 홈페이지에도 믿을 수 없는 얘기들이 너무 많구요.
“그렇습니다. 반려 인구가 급증하고, 동물병원들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많으니 사람 의료법 관련 규제들이 동물병원에도 도입될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미꾸라지같이 물을 흐리는 일부 병원들에 대한 윤리 징계요구권이나 의료광고 사전심의 제 등이 필요한데, 윤리 징계권은 꼭 필요하지만 법률적인 제약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선 광고 사전심의제부터 가능한 한 빨리 시행해보려 합니다. 그게 시장 질서에도, 반려인 보호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 이제 동물병원, 그리고 수의사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도 높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런 부분에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7년부터 사람과 동물의 소통과 동반 성장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벌여왔습니다. 그 중심에 HAB(Human Animal Bond)가 있구요. 동물행동학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은 물론, 동물 매개치료에 있어서도 국제 인증을 받고 있는 단체입니다.
앞으로 저희 수의사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반려문화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HAB 사업을 비롯, 사회적 책임을 한층 강화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한편, 이병렬 협회장(광주 중앙동물병원장)은 제주 수의대 출신으로 광주동물병원협회장과 KAHA 수석부회장을 거쳐 15대 협회장에 선출됐다.
Written by 기자 박태영 윤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