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The King’s Man) 공식 페이스북 |
[노트펫] 지난 수십 년 영국의 멋진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한 007는 첩보 영화 중에서 최강자의 입지를 지키고 있었다. 매력적인 007의 역할은 숀 코네리,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넌, 다니엘 크레이그 같은 당연히 당대를 대표하는 배우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경쟁이 없는 곳은 없는 법이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동급 최강자 007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영화가 몇 년 전 등장했다. 그 시리즈도 007과 같은 영국 출신 첩보원들의 활약을 다룬 영화였다.
야심찬 도전자 킹스맨은 007과는 결이 다른 영화다. 007은 다니엘 크레이그 이후 완전히 트렌디한 현대물로 바뀌었는데, 그런 007과는 달리 킹스맨은 고전물 같은 느낌까지 주기 때문이다.
네오 클래식(neo-classic)을 이 영화에 붙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킹스맨을 보는 내내 그 단어가 머리를 맴돌았다. 이는 영국 귀족들의 여러 문화와 풍습이 킹스맨이라는 영화 곳곳에 깊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 킹스맨에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는 멋진 명대사가 있다. 이 대사에 있는 ‘매너(manner)’는 단수로는 사람의 태도, 복수로는 예의범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매너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복수형인 ‘매너스(manners)’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사 ‘make’에 붙어있는 ‘th’는 고어(古語)의 흔적이다. 이는 현대에서 ‘s’로 대체된다. 예의범절을 뜻하는 불가산명사 ‘manners’가 주어니까 동사는 당연히 단수를 사용한다. 문장 마지막의 ‘man’은 남성이 아닌 사람 전체를 의미한다.
주말만 되면 오전에 동네 커피숍을 찾는 습관이 있다. 그곳에서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는 한 주의 피곤을 씻는데 특효약이다. 지난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집에서 나와 커피숍으로 가는 길에 킹스맨의 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사건의 주인공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던 30대 남성이었다. 그는 주차된 트럭을 발견하더니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개가 그 차의 앞바퀴에 소변을 보게 했다. 다른 사람의 차에 그것도 주말 아침 일찍 오줌 폭탄을 퍼붓는 것은 물론 예의에 어긋난 일이다. 킹스맨의 주인공인 욱하는 성격의 콜린 퍼스가 보면 경을 칠 노릇이었다.
개들이 아파트에 남긴 소변자국, 2011년 촬영 |
그런데 문제는 그 트럭의 주인이 30대 청년의 바로 뒤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차주(車主)는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평소 트럭에 짐을 싣고 물건 배달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분이다. 할아버지에게는 그 트럭이 생계수단인 셈이다.
견주는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정중하게 사과하는 대신에 자신의 개를 안고 재빠르게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연세가 있는 할아버지는 빠른 걸음의 청년을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그저 얼굴을 찡그리고 멀어져가는 젊은이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개를 포함한 반려동물을 키울 때 조심해야 할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동물 때문에 이웃이 힘들어하면 그런 점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맞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시정해야만 한다.
그 견주는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도 이를 사과할 용기가 없었다. 그저 줄행랑으로 사태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고개 숙이고 정중하게 죄송하다는 말을 차주에게 했다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콜린 퍼스 같은 사람이 그 일을 보지 않은 게 다행인 것 같은 주말 오전이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