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진료비를 눈에 잘 보이게 걸어놓거나 그 비용 내역을 보호자에게 미리 알려줘야 한다는 조항을 넣은 수의사법 개정안이 결국 국회 상임위 문턱을 못 넘었다. 대한수의사회 등 이익단체들 반발과 집요한 로비에 결국 국회가 손을 들고만 것.
특히 20대 국회가 불과 6개월 여(2020년 5월 29일까지)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번 개정안은 20대 국회의 회기 종료와 함께 물거품이 될 상황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위 법안심사소위(위원장 박완주)는 지난 19일 오전 심의한 수의사법 개정안 7건 중 동물병원 진료비 관련 내용을 다룬 개정안 5건(원유철 정재호 전재수 강석진 강효상 의원안)에 대한 결론을 내지 않고, 상임위에 그냥 계류시켰다. 미해결 과제로 남겨둔 것.
이번 개정안엔 Δ진료비 사전 고지 Δ진료비 공시제 도입 Δ수술 등 중대 진료행위 시 사전동의 의무화 등 반려인 보호권익과 직결된 조항들이 포함돼 있었다.
‘부르는 게 값’인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소비자들을 불만과 개선 욕구를 반영한 것. 실제로 소비자교육중앙회의 조사 결과 2017년 기준, 동물병원들 사이의 초진료 차이는 최대 7배, 재진료비는 5배 가량 차이가 났다.
진료비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동물병원 방문 전까지는 진료비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깜깜이 진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그런 이유로 “진료비를 미리 공시해 반려인들이 병원 선택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소비자단체들을 중심으로 빗발쳐왔다.
이번에 발의된 수의사법 개정안은 식당, 미용실처럼 개별 동물병원이 진료비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게시하는 ‘자발적 진료비 공시제’를 규정했다.
그러나 대한수의사회는 이런 개정 방향에 크게 반발해왔다. “동물병원 시설, 수의사의 실력, 수술 장비와 수술 방법에 따른 차이를 반영하기 않고 진료비만 공시할 경우 오히려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
심지어 대한수의사회는 수의사법 개정안이 심의될 조짐을 보이자, 지난 11일부터 조직적으로 대국회 로비 활동을 펼쳐왔다. 법안소위 위원들과 보좌진, 상임위 전문위원, 농식품부 등을 대상으로 연쇄 간담회를 진행해온 것.
게다가 김옥경 수의사회장을 비롯해 부산 경남, 전남 전북, 충남 충북지부장들과 분회원들은 각 지역구 의원들을 상대로 집요한 로비를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들도 날카로운 여론을 의식, 수가제와 공시제 도입 자체를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나마 “법 제도 개정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을 차근차근 논의해 보자”는 정도.
하지만 개정안이 이번 상임위 법안소위조차 통과되지 못한 채 상임위에 계류됨에 따라 이번 20대 국회에서 재론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수의사회 등의 ‘시간벌기’ 작전이 통한 셈.
법안심사소위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한 번 계류가 되면, 심의를 기다리는 다른 법안들보다 오히려 후순위로 밀리나게 되기 때문이다.
수의사 권익보호엔 여야의원 한 목소리로 찬성
반면, 이날 법안심사소위는 수의사들의 이익을 높여주자는 나머지 2개 법률개정안은 ‘무사히’ 통과시켜 대조를 이뤘다.
수의사 면허를 무단으로 빌려주었을 때 빌려준 쪽만 아니라 빌려간 쪽도 처벌을 강화하자는 개정안(김병기 의원안), 법을 위반했을 때 동물병원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것은 너무 과도하니 그냥 벌금으로 대신하게 해주자는 개정안(서삼석 의원안)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에 따라 이 두 개 수의사법 개정안은 이에 따라 상임위 전체회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순조롭게 상정될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 보통의 경우,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