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를 혼자 둘 수 없어요”
반려견 닥스훈트 ‘보고’와 서울에서 거주하는 이진영씨(26)는 추석 이야기가 나오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지난 설 명절에 KTX를 이용해 ‘보고’와 함께 귀성길에 올랐는데 반려견이 짖기 시작하자 객실 칸 밖에서 케이지를 들고 이동해야 했던 난처한 경험 때문이다.
당시 대구까지 이동하면서 마음을 졸여야만 했던 이씨는 이번 추석 명절에는 차량을 렌트해 귀성길에 오르기로 했다. 그는 “돈이 더 들더라도 자동차를 렌트할 예정”이라며 “그래야 나도, ‘보고’도 편히 집에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5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추석 연휴를 앞두고 반려인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개인 차량 등 별다른 이동수단이 없는 반려인들의 고충이 크다. 반려견과 대중교통을 탑승하는 문제부터 친인척과의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중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일부 맹견, 맹금류, 설치류, 파충류 등 다른 승객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는 동물은 KTX·SRT 모두 탑승할 수 없다. 이를 제외한 반려동물은 기차나 고속버스에 동반 탑승할 수 있지만 반려인 입장에선 마음 편하게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추석 반려묘와 KTX를 이용한 김태의씨(26)는 “명절에 KTX 좌석 2개를 예매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며 “좌석이 한자리밖에 없으면 케이지를 무릎에 올려 두고 가야 하는데 옆자리 승객의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난 2일 SRT 운영사인 SR이 발표한 ‘반려동물 동반 탑승 고객 준수사항 안내문’에 따르면 SRT는 반려동물 승차권도 구매할 수 없다.
‘반려동물 호텔’도 만석…귀성길 당일치기나 1박 선택하기도
상황이 이러다 보니 귀성 일정을 당일치기 혹은 1박으로 최소화하는 반려인도 늘고 있다.
서울 자취방에서 반려묘 2마리를 키우는 남모씨(28)는 “최근 몇 년간 그랬듯 이번에도 1박으로 짧게 본가에 다녀올 것 같다”며 “집에 혼자 남아있는 고양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크다 보니 명절이지만 금방 자취방으로 귀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호텔도 이용이 쉽지 않다. 이용료가 하루에 3만~5만원에 달하고 이마저도 명절이나 연휴 기간에는 아예 예약을 잡기 힘들다고 한다.
관악구에 위치한 한 반려동물 호텔은 지난 1일 “추석 예약은 이미 꽉 찼다”고 공지했다. 영등포구에 있는 다른 반려동물 호텔 역시 “한 달 전에 이미 예약이 완료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내 지자체 가운데 1인 가구를 위한 반려견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지만 반려인 중에선 이 같은 제도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그뿐만 아니라 반려견이 예민한 경우에는 이마저도 이용하기 어렵다. 낯선 환경에 곡기를 끊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이 악화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에서 말티즈를 키우는 박모씨(30)는 “지난 명절에 반려견을 애견호텔에 2박3일간 맡겼는데 반려견이 다녀와 노란색 토를 했다”고 전했다. 이어 “웬만하면 연휴 기간에는 친구에게 맡기려 하고 어렵다면 당일치기로 다녀온다”고 덧붙였다.
명절 등 연휴 기간 반려동물 유기 증가…작년 추석도 2000건 넘어
이 때문에 추석 연휴 기간 유기동물 증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 명절이나 휴가철마다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례들이 꾸준히 발생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반려동물 유실·유기 총 11만7천 건 중 추석 명절이 있는 9~10월 유실·유기동물 수는 2만1241건(18%)이었다. 특히 추석 연휴 직전인 9월13일부터 9월17일까지 5일간 발생한 유기동물 수는 전국에서 2084건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장기간 집을 비우는 상황이 생겼을 때 맡길 곳이 없거나 처치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유기’를 하나의 선택지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난수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명절이나 긴 연휴 전후로 지자체 보호소에 입소하는 동물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장기간 집을 비우는 상황이 생겼을 때 반려동물을 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동물을 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동물 매매가 자유롭고 유기범죄에 대한 처벌 수준도 미미하다”며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동물 유기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의 상업적 매매 금지와 입양 전 엄격한 자격 심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은숙 유기견 보호소 시온 쉼터 소장도 “명절이나 휴가철 집을 장기간 비울 때 반려동물이 많이 버려진다”며 “반려동물을 사유재산이 아닌 생명으로 보는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