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키우는 한 아빠가 길고양이 보호를 목적으로 ‘냥줍’한 뒤 이사 간다며 고양이들을 보호소에 두고 가 봉사자들이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냥줍’은 고양이를 길에서 주워(데려가) 키운다는 신조어다.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동물들을 대책없이 구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앞으로는 구조한 강아지와 고양이를 직접 키울 지, 입양을 보낼 지 등도 고려해야 ‘책임감 있는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길고양이 임의로 보호하다 이사간다며 보호소 앞에 두고 가
26일 사단법인 ‘나비야사랑해'(대표 유주연)에 따르면 지난 20일 A씨가 고양이 2마리를 이동장에 넣어 편지와 함께 보호소 앞에 두고 가는 일이 벌어졌다.
더욱이 이동장을 냉방장치(에어컨) 실외기 위에 올려둬서 고양이들이 움직이다 바닥에 떨어진 상태로 봉사자들에게 발견됐다. 놀란 봉사자들은 고양이들의 안전을 살핀 뒤 편지 내용을 확인했다.
내용에 따르면 A씨의 아이들은 지난해 가을, 주변 아파트에서 새끼 고양이들을 발견하고 엄마 고양이가 버렸다고 생각해 매일 밥을 줬다.
겨울이 되자 아이들은 고양이들이 추울까봐 주변 아파트 단지 내 집도 만들어줬다. 하지만 민원이 제기되고 고양이 집은 없어지기 일쑤였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A씨는 추운 날씨가 풀릴 때까지만 고양이들을 집에서 임시 보호하기로 했다. 그런데 고양이들을 집에 데려오기 직전 1마리가 자동차에 깔려 다리를 다쳤다.
A씨는 고양이들을 근처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치료해주고 중성화 수술도 시켰다. 입원 치료 후에는 집에서 밥을 주고 보호했다.
하지만 날이 풀리고 A씨의 가족들이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고양이들의 거처를 두고 고민에 빠지게 됐다. 고양이들을 받아주는 집주인을 찾기 힘들었고, 길에 다시 풀어주자니 아이들이 울면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들은 발톱을 갈기 위해 벽지를 뜯거나 벽에 소변을 보며 영역 표시를 하는 일명 ‘스프레이’를 하고 크게 울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집주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고양이들을 길에 풀어주는 것 또한 집안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바깥에서 자력으로 살아가기가 어려울 수 있다.
결국 A씨는 나비야사랑해 보호소에 고양이들을 두고 가게 됐다. 그는 이후 “아이들이 고양이들을 보고 싶어한다”며 보호소에서 봉사하겠다고 연락하기도 해 봉사자들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선의라고 생각한 행동, 누군가에겐 ‘민폐’될 수도
선의에서 비롯된 A씨와 아이들의 이 같은 행동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나비야사랑해의 지적이다. 동물들을 단순한 동정심을 갖고 대하지 말고 교육을 통해 제대로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동물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칭찬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불쌍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아무 곳에서 밥을 주거나 집을 만들어주는 행위는 오히려 고양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고양이의 배설물과 울음소리 때문에 이웃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밥자리가 차 다니는 길목과 가까우면 고양이가 ‘로드킬'(도로 위 죽음)을 당할 수 있어서다.
엄마 고양이가 버렸다는 것도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다솜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인 김성언 수의사는 “엄마 고양이들은 보통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사냥을 나갔다 온다”며 “그 사이 새끼들이 버려졌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만지기라도 하면 체취로 인해 엄마 고양이가 진짜 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길고양이는 예방접종, 기생충 구제 등 건강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 아이들이 잘못 만졌다가는 자칫 인수공통감염병인 진드기 등에도 노출될 수도 있다.
고양이들은 번식력도 강하다. 교미 배란을 하기 때문에 ‘아깽이 대란’이라고 불리는 봄과 가을 번식철 외에도 1년 내내 교배해서 새끼를 한번에 5~6마리씩 낳을 수 있다. 도시에는 고양이들의 천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중성화 수술 등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개체수가 금방 늘어나기 마련이다.
고양이가 보일 때마다 귀엽거나 불쌍하다고 만지고 사료를 주게 되면 사람의 손길에 익숙해져서 야생성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이 상태로 고양이를 집에 들였다가 키우기 힘들다고 다시 밖에 내놓으면 바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될 수도 있다. 결국 피해가 고양이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길고양이들은 동물등록이 의무인 개들과 다르기 때문에 신고해도 지자체 유실유기동물보호소로 보내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간혹 지자체 보호소에 들어간다고 해도 개들과 같이 입소 후 일정 기간(10일)이 지나 입양이 되지 않으면 안락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야생동물의 경우 다치면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길고양이들은 야생동물이 아니다. 야생고양이나 들고양이라는 표현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야생동물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대형 동물단체나 사설 동물보호소에서도 여러 여건상 길고양이는 잘 구조해주지 않는다. 일부 구조단체에서 비용을 받고 길고양이를 구조해주는 경우는 있지만 구조 후 다시 풀어줄지, 입양을 보낼지는 구조를 요청한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결국 길고양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직접 구조하고 병원비, 입양 등을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구조’라는 것이다.
유주연 나비야사랑해 대표는 “흔히 동물 구조라고 하면 당장의 위험한 상황만 모면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구조라는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며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만 책임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구조도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비야사랑해 “동물 구조도 끝까지 책임져야”
유 대표는 “A씨의 경우 고양이들이 사람의 손을 타고 집에 들어와서 적응하고 살았기 때문에 다시 밖에서 살기 어려울 수 있다”며 “지금도 환경이 바뀌면서 고양이들이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아 지방간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나비야사랑해는 정부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후원금이 많은 단체도 아니다. 고양이 1마리를 구조하고 입양 보내면서 후원금보다 더 많은 비용을 쓴다. 하지만 A씨처럼 구조 요청이 들어오면 외면하지 못해 또 구조하고 입양을 보내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유 대표는 “고양이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고 해서 A씨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고양이들을 사비로 중성화했고 아이들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도 이해한다”며 “다만 고양이를 좋아만 할뿐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교육이 되지 않아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고양이들이 어렸을 때 도움을 요청했다면 입양 보내기가 더 수월했을 수도 있다”며 “또 길고양이들을 집까지 들여와서 키운 뒤 다시 풀어주는 것은 임시보호가 아니라 반려묘 유기로 벌금을 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물들은 보고 싶으면 데려다 키우고, 아니면 버리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길고양이를 구조해서 집에서 키우기 시작했다면 10~15년 가족처럼 대하거나 하루 빨리 다른 가족이라도 찾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