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통틀어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개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고양이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고양이의 사랑스러움을 설파하는 ‘열혈 집사’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반려묘 양육에 대한 만족도는 70%에 달했고, 만족도가 높다고 답한 가구의 82%가 “타인에게도 양육을 추천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KB경영연구소, 2018)
10년 이상 방송기자 생활을 하다가 작가가 된 펫아티스트 나리킴. “고양이를 만난 후 삶이 훨씬 행복해졌다”고 말할 정도로 고양이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고양이는 그녀가 그림을 시작한 계기이자 작품의 단골 소재다. 서울 에코락갤러리(강남구 신사동 하림빌딩 2층)에서 그를 만나 그림에 숨겨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자에서 작가로 전향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원래는 작가로 전향할 계획이 없었죠. 무지개다리를 건넌 제 고양이를 그리워 그냥 그려본 그림을 제 SNS에 서 보고 어떤 큐레이터가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홍콩 아트페어에서 전시를 하게 됐고, 에코락갤러리와도 연이 닿아 정식 작가가 될 수 있었죠.
-고양이를 삶에 들이고 난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고양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늘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며 살았어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져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죠. 치열하게 살면서도 만족을 몰랐던 삶이었어요.
하지만 제 삶에 고양이가 들어온 이후 삶의 여유를 배웠어요. 잠이 많고 멍 때리기 좋아하는 고양이를 보면서 잠시 쉬어가도 되겠다고 느낀 거죠. 고양이와 살면서 행복한 추억들이 참 많아요.
하지만 고양이가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이에요.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도 그 나름대로 의미 있고 소중하다 생각해요.
-반려인으로서 느낀 고양이만의 매력이 있다면?
흔히들 고양이가 독립적이다, 새침하다,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같이 살아 보니 참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동물이더라고요.
얼마나 사람을 잘 따르는지 몰라요. 제게도 사랑을 많이 주었죠. 고양이와 따뜻한 교감을 나누면서 고양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생각을 했어요.
-‘묘한’ 이라는 표현이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묘함’이란 무엇인지?
고양이(猫)와 묘하다(妙)는 두 가지 의미를 담은 표현입니다. 일종의 언어유희죠.
기자로서 제가 당시 기사로 다뤘던 예술계의 사건들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도 있죠. ‘조영남 화투 대작’ 사건이 터졌을 때 그린 그림이 ‘대작’이에요. 대작은 뛰어난 작품(大作)을 뜻하기도 하고 남을 대신하여 작품을 만든다(代作)는 뜻도 됩니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을 취재하면서 정작 화가 본인은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그림 감정사들은 “그 작품은 천경자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상황이 무척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 <미묘도>입니다.
아름다운 고양이(美猫)를 소재로 미묘(微妙)한 실제 상황을 풍자한 것이죠. 기자로서의 경험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림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예술이라고 어려울 필요는 없어요. 각자 그림을 보고 느끼는 진실한 감상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제 그림 중 <묘한 몬드리안>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면서 농담삼아 “저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겠다” 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작품 뒤에 숨은 당시의 시대상, 작가의 노력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겠지만 문득 “그렇게 쉽다면 나도 한 번 몬드리안 스타일로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종의 ‘풍자’라는 점을 알아보는 분도 있을 테고, 아닌 분도 있겠죠. 미술에 정답이란 건 없으니 보이는 대로 느끼시면 될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을 담은 그림도 있어요. 무지개다리를 건넌 ‘재즈’를 생각하며, 구슬을 꿰어 한 땀 한 땀 붙여서 탄생한 것이 <비쥬 재즈>란 작품이에요. 김환기 화백은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점을 찍으셨다는데 저는 고양이에 대한 그리움을 점으로 표현한 거죠. 점이라고 다 같은 점이 아니에요.
-앞으로의 계획은?
제 그림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작가’라는 이름을 얻게 됐어요. 아직은 그렇게 불리는 것이 어색하지만, 제 작품을 보며 느낀 감상을 나눠주는 분들을 만나면 참 고맙더라고요.
고양이와 그림을 만나고, 뜻밖에도 지쳐 있던 마음에 큰 위안을 받았어요. 작가로서 목표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 것 같지만, 그저 마음에 울림을 선사하는 그림을 꾸준히 그려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