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인간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고독한 사냥꾼 고양잇과동물과는 태생부터 다른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람 인(人)이라는 한자를 보면 인간은 그 누군가에게 기대고 사는 것이 본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합리성을 추구하는 생명체다. 그래서 의존은 일방적이지 않고 양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자신에게 기대고 있다. 그런 양방향성이 의존의 핵심이다.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공짜가 없는 의존인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인간을 사회적인 동물 즉 호모 소키에스(homo socies)라고 한다. 사회라는 인간으로 구성된 무리가 삶의 핵심임을 감안하면 정확한 표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지난 수만 년 동안 계속되던 호모 소키에스의 삶은 최근 눈에 보이지도 않은 작은 크기의 코로나19(COVID-19) 바이러스 때문에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다.
코로나19의 유행은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극도로 경계하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삶의 하나였던 만남은 물론 짧은 대면 접촉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호모 소키에스들은 짧은 외출을 할 때도 자신은 물론 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착용한다. 짧은 외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안경을 쓰는 사람에게 마스크 착용은 고역이다. 유리 사이로 계속 서리는 김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며칠 전,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뿌옇게 김이 서린 유리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 때 좁은 골목에서 튀어나온 어떤 존재가 다리를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섬뜩하였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런데 필자를 당황시킨 존재는 사람이 아니었다. 개였다. 진돗개 크기의 개였다.
코로나19 이전처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으면 충분히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중형견의 등장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시야의 30% 정도만 확보하고 걷다보니 예기치 못한 곳에서 튀어 나온 개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미국에서는 개 물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리드 줄 길이에 대해 규제하는 곳이 많다. 개들을 산책시키는 공원의 경우, 4피트(1m20cm)가 일반적이다. 2017년 9월 트윈 레이크스 레크리에이션 에어리어(미주리주)에서 촬영 |
필자의 다리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였던 개는 주인과 함께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인의 리드줄은 아무리 보수적으로 보아도 3미터가 넘어보였다. 그렇게 긴 줄로 개를 산책시키면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줄 수도 있다.
한국은 안경 착용률이 높은 국가다. 마스크를 많이 착용하는 최근 현실을 감안하면 과거보다 가급적 짧게 줄을 하고 다니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괜히 다툼의 여지가 생길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블루(blue)는 우울한 마음을 뜻한다. 그런 블루가 코로나와 결합하여 ‘코로나 블루(Corona blue)’ 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2020년 봄 모든 한국인들의 마음에는 크고 작은 코로나 블루가 존재한다.
비단 한국인 뿐만 아니다. 지구촌 70억 인류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기에는 모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