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1970년대는 고양이를 실내가 아닌 마당에서 키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마당에서 고양이를 키우면 자칫 얼어 죽을 수 있다고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당시 일어나지 않았다.
고양이는 추위에 매우 민감한 동물이어서 찬바람이 조금이라도 불기 시작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아궁이가 있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잠을 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겨울이 지나고 주변에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 되면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마당에 있는 자기 집에서 생활했다.
그런데 그 당시 실내가 아닌 마당에서 고양이를 키운 사람들은 고양이가 집안 곳곳에 자신의 발톱 자국을 남기는 무서운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모를 것이다. 어릴 때 키웠던 나비는 마당에 있는 나무들에 그런 흔적들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그런 나비의 행동은 주인들에게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나비 입장에서는 좀 서운한 일이겠지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마당의 나무들은 주인의 입장에서는 관심 밖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만약 나비가 실내에서 살았고 가구나 테이블에 그런 생채기를 냈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고양이가 발톱 자국을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영역 표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야생의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에서 사냥과 번식을 한다. 사냥은 현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행위이며 번식은 미래 세대를 위한 신성한 의식이다.
만약 성체 고양이가 그런 자신만의 배타적인 영역이 없다면 이는 현재의 생존과 후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슬픈 일이다.
그런데 영역은 하늘에서 고양이에게 떨어지지 않는다.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고양이는 자신의 무력을 온 동네에 충분히 과시해야 한다. 자신이 다른 고양이들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심지어 억센 발톱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다른 고양이의 눈에 잘 띄는 랜드 마크(land mark) 같은 곳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고양이가 뒷다리로 일어서서 앞발톱으로 큰 나무에 그런 자국을 남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며 일반적인 일이다.
뒷발로 일어서서 발톱자국을 내고 있는 반달가슴곰. 2012년 어린이대공원 |
그런데 이런 행동은 고양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곰도 고양이처럼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곰은 마치 사람처럼 앞발로 서서 사람처럼 걸어 다니기도 한다. 일설에는 곰의 이러한 직립 본능이 곰의 나쁜 시력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라고도 한다. 시력이 나쁜 곰이 멀리 보기 위해서는 직립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무래도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직립한 반달가슴곰(박제). 2015년 국립생태원 |
그래서 곰들은 자신이 생채기를 낼 수 있는 위치보다 높은 곳에 곰의 발톱자국이 있으면 미련 없이 그곳을 포기한다. 자신보다 덩치 큰 곰과 싸워서 이길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굳이 피를 보는 싸움을 피하는 것이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런 점 하나만 보아도 곰을 미련한 동물이라고 평가절하 해서는 안 된다. 곰들의 세계에는 그들만의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잘 지키기 때문이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