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물건’으로 취급 받는 동물의 법적 지위를 바꾸려는 ‘민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지 벌써 1년이 다가온다. 그 사이 문재인정부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로 정식 회부됐다. 하지만 국회는 아직 묵묵부답. 개정안을 본격 다뤄보지도 않았다. 분노한 시민 5만명 시민들은 지난달 입법 청원도 냈다.
국회의원연구단체 ‘동물복지국회포럼’이 그런 염원을 담아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와 입법적 변화 모색 국회토론회’를 열었다. 동물의 법적 지위를 다룬 민법 개정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 후속 입법 과제와 현실적인 시행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
동물복지국회포럼, 28일 ‘동물의 법적 지위와 입법적 변화 모색 국회토론회’ 열어
발제를 맡은 조해인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장은 “민법에 신설하려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제98조의 2, ①항)는 조항은 ’선언‘적 규정이기는 하나, 사법(私法)의 기본법인 민법의 지위상, 여러 법령의 제·개정 등 (후속)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고, 장기적으로 동물권(動物權)이 향상되는 효과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사람’과 ‘물건’으로만 나눠져 있는 법적 지위에 ‘동물’이라는 제3의 카테고리를 법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포괄 규정을 다루는 ‘기본법’인 민법의 특성상, 민법 개정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가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치명적인 유보 규정도 함께 갖고 있어서다.
조 센터장은 “민법 개정안은 동물의 법적 지위에 대해 ‘동물에 대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제98조의 2, ②항)고 돼 있다”면서 “이는 오히려 ‘물건’(이란 점을 현행법으로) 명문화하는 근거를 제공한다는 비판도 받는다”고 지적했다. 민법 개정안이 막상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동물이 ‘물건’의 법적 지위를 완전히 탈피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또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은 동물보호법 등 별도의 법률로 해결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람의 사적 생활관계(재산 및 신분)을 규율할 목적으로 제정된 민법으로 처벌 등을 강제할 경우 여러 법령들과의 사이에서 오히려 혼란만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조 센터장은 이에 따라 “외국 입법례에서 보듯 동물을 물건이 아니라고 규정할 경우, 모순되는 여러 규정에 대한 추가 개정을 동시에 진행해야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동물보호법에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거나 세분화하고, 보호자에게 맡기는 과도한 ‘입증책임’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 등 후속 입법조치가 필요하다는 것.
민법 ‘선언적’ 규정만으론 한계…구체성 갖는 후속 법령 제·개정 동시 진행해야
그외 개별 법률들에 손해배상 규정을 강화하거나 다양화하고, 동물을 상대로 한 압류 및 가처분 등의 금지, 동물을 권리 주체로 인정하는 상속 신탁 후견제도의 확대 등도 필요하다.
조 센터장은 이에 따라 “민법 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라며 “민법에 이어 다른 후속 법령의 제개정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세계에 걸쳐 ‘동물권'(動物權)을 헌법이나 민법 등에 명시한 나라는 현재 7~8개국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에 동물권을 명시한 나라는 독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인도 브라질 이집트 등이고, 민법에 동물권을 명시한 나라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토론자로 나선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법제화에 대한 새로운 트렌드도 소개했다.
“일찍 민법 개정을 단행했던 독일 오스트리아 등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부정적 표현을 사용했다면, 프랑스 벨기에 등 후발국들은 ‘동물은 감응력 있는 존재다’라는 긍정적 표현을 통해 동물의 법적 지위를 정의하고 있다”는 것.
이 대표는 “거기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소유자의 의무’에 대한 규정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스위스는 민법에 “동물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동물을 돌볼 의무가 있음”을, 독일은 “소유자의 권리 행사에 있어 동물보호를 위한 특별 규정을 준수할 것”을 명시한 규정을 마련한 것 등이다.
또 미국 대부분의 주법이 동물학대 행위자의 동물소유권을 박탈하거나 일정 부분 제한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유럽, ‘소유자 의무’ 규정 강화 추세…동물학대 하면 소유권 박탈 및 제한 필요
녹색기술센터 한민지 박사도 “인간의 이익과 동물의 이익이 상충될 경우에 양자의 이익을 모두 대변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스위스에서는 동물변호사가, 오스트리아에서는 옴부즈만 제도가, 독일에서는 동물보호단체 소송제도가 도입돼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편, 국회포럼 공동대표이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박홍근 의원은 이날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선언적 내용의 입법조차 제대로 심사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 입법부 일원으로 부끄럽다”면서 “이번 정기국회 통과를 위해 더욱 힘쓰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