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독일 의사 베르너 포르스만은 특별한 실험을 했다. 자신의 심장 동맥에 길고 가느다란 카테터(catheter)를 직접 밀어 넣었다. 그 이후 카테터에 스텐트(stent)를 연결해 혈관의 막힌 곳을 뚫거나, 반대로 혈관을 막아(색전, 塞栓) 출혈을 치료하는 길이 열렸다. 약을 쓰는 ‘내과’, 수술로 해결하는 ‘외과’ 중간에서 이 둘을 연결해주는 중재술(仲裁術, intervention)이란 영역을 개척한 그는 1956년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30여년 전부터 사람 쪽 수술을 대체하는 시술법으로 널리 퍼졌다. 강아지 고양이 치료에 쓰기 시작한 건 2010년 전후부터. 그러다 최근엔 심장뿐 아니라 종양 등 다양한 질환 치료에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수술이 어렵다는 간암, 전립선암 등도 치료할 길이 열렸다. 중재술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해마루2차동물병원 전성훈 수의사(인터벤션센터장)에게 물었다. <편집자 주>
사람 암치료에 쓰던 색전술, 이젠 강아지 고양이 종양에서도 진가 발휘
강아지에 간이나 전립선 종양은 얼마나 생기나?
간 종양은 전체 종양 환자의 약 1.5%에서 생긴다. 해외 자료에는 미니어처슈나우저 등에서 잘 생긴다고 돼 있다. 또 전립선 종양은 0.2~0.6%정도. 그만큼 드물고, 품종간 차이도 크지 않지만 한번 생기면 소변을 못 보거나, 흘리고 다니는 등 타격이 크다. 일상이 무너지는 것이다.
듣고 보니, 강아지 고양이 종양은 아직 뚜렷한 게 없는 모양이다.
안타까운 대목이다. 수의학에선 종양을 발생하게 하는 발암물질(carcinogen)에 대한 연구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연구논문 등 문헌도 부족하다. 종양의 원인이나 발병률, 빈발하는 품종 등 여러가지가 아직 불명확한 상태다. 지금 나와 있는 것도 대부분 미국 유럽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국내 임상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제약이 많다.
암이 의심될 경우, 어떻게 진단을 내리는가?
보통 초음파를 비롯한 영상검사와 혈액검사를 통하다. 필요한 경우 세포나 조직검사, 전이(轉移)평가 등을 위해 컴퓨터단층촬영(CT)검사를 추가하기도 한다. 강아지와 고양이도 조금 다르다. 강아지는 간세포암종(hepatocellular carcinoma)이 많은 반면, 고양이는 담관암이 상대적으로 많다. 게다가 양성(良性)도 많아, 발견 즉시 수술하기 보다는 일정 기간 모니터링을 먼저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 쪽과 차이가 있는가?
간도, 전립선도 사람 쪽과는 차이가 크다. 간암의 경우, 사람은 간경화나 지방간이 주요 발병인자. 그래서 간암 증상이 나타났을 땐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전립선암도 사람은 성(性)호르몬과 관련이 깊다. 그래서 호르몬 요법으로 초기에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강아지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을 많이 하지 않는가? 성호르몬과 관계없이 생긴다는 것이다. 중성화가 전립선 종양엔 별다른 예방효과가 없는 셈이다. (* 중성화 수술을 한 경우, 암컷은 유선종양이나 자궁축농증, 수컷은 고환종양 등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편집자 주)
어느 정도 되면 수술을 하는가?
간 종양은 수술로 완전히 잘라내면 평균 생존률이 3년 정도다. 예후가 좋다는 얘기다. 하지만 깔끔하게 잘라내기가 어렵다. 특히 횡경막과 큰 혈관이 붙어있는 우측 간이 더 그렇다. 그쪽에 종양이 생기면, 수술 도중 또는 수술 이후 사망률이 10%나 된다. 암세포가 남아 재발하거나 혈전을 만들기 때문. 종양세포가 주변에 널리 퍼져 있는 경우라면 수술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전립선 종양도 전립선 절제술 같은 방법이 있지만,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높다. 또 수술 후에 요실금(尿失禁) 같은 부작용 때문에 수술을 잘 권하지 않는 편이다.
수술이 어렵다면,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도 있지 않은가?
물론이다. 하지만, 간 종양의 경우 아직 항암치료 효과가 부작용 대비 미미한 수준이다. 방사선 치료도 방사선 선량이 많아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 전립선도 방사선 치료가 가능하지만, 높은 비용과 잦은 마취로 인해 진입장벽이 있는 편이다.
수술이 불가능한 간 종양과 전립선 종양의 비수술적 치료 요법
그런 때 예후 좋은 치료법이 있는가?
이처럼 다른 방법이 마땅찮을 때 동맥색전술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특히 간암의 경우, 사람들은 간동맥화학색전술(TACE)이 대표적이다. 항암제를 섞어서 쓴다. 치료 효과도 좋은 편이다. 전립선 종양도 마찬가지다. 전립선동맥색전술이 예후는 좋은 반면, 부작용은 적다.
어떻게 하는 것인가?
두 가지 모두 원리는 비슷하다. 악성 종양일수록 그곳으로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는 혈관이 많이 생긴다. 이를 ‘영양동맥’(feeding artery)이라 하는데, 그 동맥을 막아 영양과 산소이 전달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혈관을 통해 접근하기 때문에 몸에 통증이 없고, 입원을 하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
강아지 고양이 치료에 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심장쪽 혈관중재술은 2010년 전후부터 일부 대학병원 수의내과에서 조금씩 시작했다. 하지만 종양 치료 등 본격적인 중재술은 최근부터다. 중증질환과 만성•복합질환을 주로 다루는 해마루2차동물병원조차 지난해 12월 인터벤션센터를 정식 오픈하며 임상에 본격 적용하기 시작했다. 국내 수의계에 규모를 제대로 갖춘 전문클리닉이 생긴 건 그 때가 처음. 올해 상반기에만 대략 60 마리에 혈관 중재술을 시술했다.
간, 전립선 종양 외에는 어디 어디에 적용할 수 있나?
일단 메스를 쓰지 않고, 출혈이 없고, 전신마취도 필요 없다는 게 큰 장점이다. 혈관 투시 장비를 이용하면 반려동물의 아주 미세한 모세혈관까지 보면서 미세 침습으로 치료하기 때문이다. 종양 치료의 경우, 종양 크기가 40~70%가량 작아지는 것은 물론 간수치가 낮아지는 등 증상이 두루 개선된다. 여러 진료과목에서 다양한 질병에서 쓸 수 있다. 저희 센터의 경우, 최소 20가지 이상 질환에 적용하고 있다.
메스도, 수혈도 필요 없다…종양 크기 줄여 일상 복귀
간암이나 전립성암이 있는 경우, 보호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종양의 경우, 특별한 예방법을 얘기하기 어렵다. 그래서 증상이 심해지기 전, 최소한 7~8세령부터는 주기적인 건강검진으로 조기에 발견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 초기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아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전성훈 수의사는
전남대 수의대에서 학사를 거쳐 영상의학으로 석사를 받았다. 이후 미국 샌디에이고 인피니티메디컬(infiniti Medicial) 인터벤션 코스에서 트레이닝을 받으며 반려동물 중재술로 임상 목표를 세웠다. 서울대병원에서 간암색전술의 권위자 김효철 교수(영상의학과)로부터 사람쪽 증례와 시술법 등을 전수받기도 했다. 국내 동물병원계 처음 개소한 전문클리닉(인터벤션센터)에서 종양 등 다양한 분야에 중재술을 확립하는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수의인터벤션영상의학회 정회원.